영천시가 지역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수십억원의 지방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가운데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응급실 부분 휴진 사태가 발생하면서, 지방재정 지원의 실효성과 의료기관의 책임 분담을 둘러싼 논쟁이 영천시의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영천시의회 배수예 의원은 지난 11일 열린 제254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응급실의 부분 휴진 사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시민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지원과 성과, 책임을 연계하는 새로운 재정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핵심은 ‘얼마나 지원했느냐’가 아니라 지원한 예산이 시민에게 어떤 응급의료서비스로 돌아왔느냐는 것이다.
배 의원은 영천시가 2024년부터 3년간 시비만 53억 원 이상을 지원했음에도 응급실 부분 휴진이라는 상황이 발생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배 의원은 “시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시민들이 필요할 때 응급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시민 혈세를 투입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의료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시정질문에서 배 의원은 단순히 영천병원의 운영 문제를 넘어 의료법인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재정적 책임 분담 구조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배 의원은 영천병원의 상급법인인 영남대학교의료원이 2025년 기준 419억원의 의료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727억원의 준비금을 적립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본원이 재정적 여력을 갖고 있음에도 지역 거점병원인 영천병원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없이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라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지방정부가 지역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법인의 자체 투자와 자구 노력까지 지방재정이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지방의회의 예산 감시 논리로 풀이된다.
“지원은 하되, 조건과 성과를 명확히 해야”배 의원이 제시한 대안은 향후 재협약 과정에서 기존의 ‘지원 중심’ 구조를 ‘성과·책임 중심’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향후 만료된 양해각서(MOU)를 재체결할 경우 ▲영남대학교의료원 본원의 대응투자 의무 명시 ▲응급실 전담의 확보율 등 의료인력 관련 지표 설정 ▲응급환자 역내 수용률 등 객관적인 성과지표 도입 ▲목표 미달 시 지원금 조정 ▲지원금 결산자료 및 협약 이행실적에 대한 영천시의회 정기 보고 등을 요구했다.
특히 ‘성과지표 연동’은 향후 영천시의 의료기관 지원정책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지방정부가 매년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없다면 재정지원이 관행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 의원은 “일방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호 책임에 기반한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시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의료기관의 책임과 성과를 계약과 협약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천시 “본원 투자·병원 자구 노력·응급의료 기능 유지 여부 반영”
영천시 역시 배 의원의 문제 제기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답변을 내놨다. 영천시 보건소장은 응급실 일시 중단과 관련해 “시민들께 심려를 끼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지방 중소도시가 겪고 있는 구조적인 의료인력 구인난을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재협약 과정에서 ▲본원 차원의 투자 ▲병원의 자구 노력 ▲실제 응급의료 기능 유지 여부 등을 성과지표에 반영하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원금 집행 내역과 운영 실적을 철저히 관리하고, 필요할 경우 관련 내용을 의회에 보고하는 방안까지 병원 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 공공성’과 ‘혈세 책임성’ 사이…영천시의 선택은
이번 시정질문은 지역 응급의료 문제를 단순한 병원 운영의 문제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지방재정과 의료 공공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지방정치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응급의료는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지방정부가 일정 부분 재정을 투입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공공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정지원이 무조건적이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지방재정의 건전성과 예산 집행의 책임성에 대한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결국 앞으로의 관건은 ‘지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으로 지원할 것인가’에 있다. 영천시가 향후 영남대학교 영천병원과의 재협약에서 본원 투자와 병원의 자구 노력, 응급의료 인력 확보, 응급환자 수용률 등 구체적인 기준을 협약에 담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아울러 영천시의회가 지원금의 집행 및 운영성과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실질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시민의 혈세로 유지되는 지역 응급의료체계라면 시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역시 분명해야 한다.
배수예 의원의 이번 시정질문이 영천시의 의료정책과 지방재정 지원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