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제조업이 인공지능(AI)을 생산현장과 미래모빌리티에 접목하는 산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의 자동차부품과 기계·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에 AI, 로봇,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은 지난 8일 대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경북자동차임베디드연구원, 경북경산산학융합원과 공동으로 ‘피지컬 AI & 미래모빌리티 혁신포럼’을 개최하고 이 같은 산업전환 전략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포럼에는 김희석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이상훈 경북자동차임베디드연구원장, 김봉환 경북경산산학융합원장, 미래모빌리티 및 AI 분야 입주기업, 공공기관과 연구기관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의 특징은 AI를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아니라 제조·자동차·로봇 등 실물산업의 경쟁력을 바꾸는 핵심 생산요소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특히 피지컬 AI와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지역 제조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하는지를 놓고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AI가 자동차와 제조업의 경쟁력 결정포럼 1부에서는 국내 산업 및 기술 전문가들이 피지컬 AI와 미래모빌리티를 둘러싼 산업 변화와 글로벌 시장 흐름을 짚었다. 산업연구원(KIET) 조철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 피지컬 AI와 SDV’를 주제로 자동차산업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AI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설명했다.
SDV는 차량의 기능과 성능을 소프트웨어가 정의하고 관리하는 개념이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하나의 지능형 컴퓨팅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 자동차산업의 경쟁방식 역시 부품의 성능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데이터, AI 기술 역량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한화비전 임정은 상무는 ‘피지컬 AI 시대, 지능형 디바이스의 진화와 미래’를 통해 AI가 실제 기기와 생산현장에 결합하는 과정과 산업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정규 교수는 ‘미래모빌리티산업의 현황 및 글로벌 시장 동향’을 주제로 국내외 미래모빌리티 산업의 변화와 기업의 대응 방향을 소개했다.
결국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AI 기술을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를 넘어 이를 실제 생산라인과 자동차·로봇·모빌리티 제품에 얼마나 빠르게 적용하느냐가 지역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대경권 4대 성장엔진과 맞물린 산업전환이번 포럼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대경권의 산업 육성전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8월 대구·경북의 대표 성장엔진으로 미래모빌리티·로봇·반도체·이차전지 등 4개 산업을 선정했다. 대구·경북은 이를 기반으로 첨단 소재부품과 AI 로봇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미래모빌리티와 로봇, 반도체, 이차전지는 서로 독립된 산업이라기보다 AI를 매개로 연결되는 산업군이라는 점에서 이번 포럼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미래모빌리티에는 자율주행과 SDV가 필요하고, 로봇에는 피지컬 AI와 지능형 센서가 요구된다. 반도체는 이들 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며 이차전지는 전동화와 이동성을 뒷받침한다. 즉 AI를 중심으로 대경권 4대 성장엔진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조업 AI 전환 'M.AX'와 지역산업의 결합정부가 추진하는 제조업 AI 전환, 이른바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정책 역시 지역산업의 변화에 힘을 싣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제조업의 AI 전환을 생산공정뿐 아니라 제품과 산업단지 단위로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팩토리 사업을 통해 제조현장의 생산성과 품질 개선 성과도 제시했다.
특히 정부는 M.AX를 지역산업과 연계해 지역별 주력 산업단지를 AI·로봇 기반의 제조 AI 클러스터로 전환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구·경북 입장에서는 기존 제조업 기반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자동차부품, 기계, 전자·IT 등 제조기업과 관련 연구·지원기관이 구축돼 있는 만큼 AI 기술을 현장에 접목할 경우 단기간에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기업이 AI를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과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갖추느냐다. 이번 포럼이 산·학·연·관 협력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 적용"포럼 2부에서는 발표 연사와 지역 산업 전문가들이 참여해 산업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주요 논의 대상은 AI와 미래모빌리티 기술의 지역산업 적용,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 산·학·연·관 협력체계 구축, 입주기업의 사업화 지원 등이다.
특히 지역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기 어려운 만큼 대학과 연구기관, 공공기관이 보유한 기술과 인프라를 기업이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생산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한 뒤 실제 공정에 적용하고 그 결과를 다시 제품과 서비스 개선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 역시 제조 데이터의 공동 활용과 AI 모델 개발,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AI 팩토리 수출산업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지역 산업정책의 성패는 ‘AI 기업을 얼마나 많이 유치하느냐’보다 기존 제조기업을 얼마나 빠르게 AI 기업으로 전환시키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DGFEZ "입주기업 글로벌 진출까지 지원"DGFEZ는 이번 포럼을 계기로 경제자유구역 내 입주기업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신산업 대응 기반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제도와 인프라, 네트워크를 연결해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화와 시장 진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김희석 직무대행은 “5극3특 대경권 4대 산업 선정과 M.AX의 전 권역 확대 흐름 속에서 협력과 속도가 핵심”이라며 협력의 폭을 넓히고 기업 지원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입주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세계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도·인프라·네트워크를 한데 모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산업 '체질 개선'이 관건대경권이 피지컬 AI와 미래모빌리티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개발 사업을 넘어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 제조기업이 AI를 도입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현장에 필요한 인재와 기술을 공급하며, 공공기관은 실증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공급망 협력, 데이터 공유, 공동 연구개발, 규제 및 제도 개선까지 뒷받침돼야 한다. 대경권의 미래모빌리티 전략 역시 자동차 한 분야에 국한하기보다 AI·로봇·반도체·이차전지 등 연관 산업을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묶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5극3특 전략과 지역 AX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주력산업의 AI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대구·경북에도 산업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정책적 기회가 열리고 있다. 결국 관건은 속도다. 피지컬 AI와 SDV, 자율주행 등 기술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역 기업이 변화에 뒤처질 경우 기존 제조업 기반 자체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대경권이 기존 제조업 기반에 AI와 소프트웨어를 성공적으로 결합한다면 자동차부품과 기계 중심의 산업구조를 넘어 AI·로봇·미래모빌리티가 결합된 고부가가치 산업 생태계로 전환할 수 있다. 이번 ‘피지컬 AI & 미래모빌리티 혁신포럼’은 이러한 전환을 위한 첫 번째 논의의 장을 넘어 대경권 제조업이 AI를 활용해 산업 경쟁력을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업·대학·연구기관·공공기관을 연결하는 협력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