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 영천의 전통문화가 주민들의 손끝과 몸짓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풍물의 힘찬 장단에서부터 오래된 상여소리, 생활문화 동아리의 음악과 춤까지. 세대와 장르를 아우른 문화예술의 향연이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잇는 무대가 됐다.
영천문화원(원장 류시홍)이 마련한 ‘2026 영천문화제’가 지난 3일 조양각 전정에서 지역주민 등 2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 문화제는 단순히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공연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과 주민들의 일상 속 문화활동을 하나의 무대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특히 전문 예술인 중심의 무대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직접 배우고 익힌 기량을 선보이며 ‘주민이 만드는 문화’라는 지역문화제의 본질을 충실히 보여줬다.
행사의 시작은 우리 민속예술의 역동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2회 영천시 풍물경연대회’가 열었다. 영천 곳곳에서 활동하는 풍물단들이 한자리에 모여 힘찬 북소리와 경쾌한 꽹과리, 장구와 쇠의 조화를 선보였다. 각 팀은 자신들만의 색깔과 호흡으로 무대를 채우며 풍물이 단순한 공연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정서를 공유하는 살아 있는 문화임을 보여줬다.
경연 결과 장원은 신녕울림풍물단이 차지했다. 차상에는 중앙동 주민자치사물놀이단과 고경 농사랑풍물단, 차하에는 대창면 풍물단, 청춘나래, 화남 풍물단, 명주농악청소년풍물패, 장수사물패, 별빛사물단, 신천지 풍류단이 각각 선정됐다. 개인별 우수상도 마련돼 참가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격려했다.
풍물의 흥이 지나간 자리에는 우리 지역의 기억을 되살리는 ‘영천 상여소리 재연’이 이어졌다. 상여소리는 한 시대의 장례문화이자 마을 공동체가 함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던 전통의 소리다. 이날 재연은 단순한 민속공연을 넘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맥락과 의미를 오늘의 관객에게 전달하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점차 접하기 어려워진 전통 상례문화를 직접 마주하면서 관람객들은 우리 선조들의 삶과 공동체 문화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의 소리를 오늘의 무대에 다시 불러낸 이번 재연은 전통문화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세대와 만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임을 보여줬다.
문화제의 마지막은 주민들이 직접 주인공으로 나선 수강생 음악회가 장식했다. 올해 영천문화원 문화예술 강좌를 통해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수강생들은 색소폰과 난타, 아코디언, 라인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무대에 오른 이들에게 문화예술은 더 이상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배우고 표현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일상의 일부였다.
무대가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전문 공연장에서 만나는 완성도 높은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서툴지만 진지한 연주와 춤, 그리고 무대를 향한 주민들의 열정은 생활문화가 지역문화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병삼 영천시장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함께 즐기며 지역 문화의 저력을 보여준 뜻깊은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영천문화원과 함께 우리 고유의 전통을 잇고, 시민 누구나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활기찬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영천문화제가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전통과 현대, 예술가와 주민, 무대와 일상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데 있다. 풍물의 장단에는 공동체의 흥이 있었고, 상여소리에는 지역의 기억이 담겼으며 수강생들의 공연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문화적 열정이 녹아 있었다.
전통문화의 보존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경험하고, 참여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때 비로소 문화는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
‘2026 영천문화제’는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영천의 문화가 과거의 유산을 넘어 주민들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영천문화원이 앞으로 지역의 전통문화와 생활문화, 주민 참여형 문화예술을 어떻게 연결해 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