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인구정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민등록을 했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역을 찾고, 머물고, 활동하며 관계를 맺고 있는가’로 확장되고 있다.
경북 영천시가 이러한 정책 전환의 흐름 속에서 생활인구를 지역의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삼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발굴에 나섰다.
영천시는 지난 27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생활인구, 지역의 미래를 연결하다’를 주제로 2026 영천시 생활인구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생활인구의 개념과 필요성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천이 가진 관광·문화·스포츠·농업·산업 등 다양한 지역자원을 사람의 이동과 체류, 활동과 관계 형성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행사에는 전문가와 지역 관계자, 영천시 공직자 등 약 100명이 참석해 생활인구 정책의 방향과 지역 특성에 맞는 시범사업 발굴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나다움놀이터 사회적협동조합이 주최·주관하고 산은나눔재단, (사)사회적경제활성화지원센터, 영천시가 후원했다.
‘인구 늘리는 정책’에서 ‘사람이 머무는 정책’으로이번 포럼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생활인구를 단순히 관광객이나 방문객을 늘리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활인구 정책의 핵심은 지역에 주민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역을 방문하고, 일정 기간 머물고, 일하거나 배우며, 여가와 소비활동을 하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지역 활력의 중요한 주체로 바라보는 데 있다. 이는 특히 인구감소지역에서 기존의 정주인구 중심 인구정책이 가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실제 정부가 시범지역을 대상으로 산정한 생활인구 자료에서 영천시는 통근형 생활인구 특성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됐다. 2023년 4~6월 기준 영천시의 등록인구는 약 10만3,600명, 체류인구는 약 24만3,900명으로 집계됐으며 체류인구가 등록인구의 약 2.4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영천의 인구정책이 주민등록인구만을 바라봐서는 지역의 실제 인구 흐름과 활동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통근을 목적으로 영천을 오가는 사람들은 지역의 산업 및 일자리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책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라 이미 영천에서 일하고 이동하는 사람들을 지역의 소비와 문화, 여가, 관계 형성으로 연결한다면 새로운 생활인구 정책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영천형 생활인구’의 방향이날 포럼에서는 김만희 패스파인더㈜ 대표, 조득환 경북생활인구지원센터장, 안상연 전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장, 정유진 나다움놀이터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각각 생활인구의 필요성과 정책 방향, 타 지역 사례, 영천형 시범사업 방향 등을 공유했다.
발표와 토론에서는 생활인구 정책이 특정 부서의 단일 사업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됐다. 관광정책만으로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관광·문화·체육·농업·산업·일자리·교육·교통·지역공동체 등 다양한 정책 분야를 생활인구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천의 경우 이미 지역 곳곳에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자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원을 만드는 것’과 함께 ‘기존 자원을 사람의 체류와 관계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찾을 이유, 머무를 이유,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들어야”포럼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했다. 사람을 한 번 방문하게 만드는 것보다 그 사람이 다시 찾고, 더 오래 머물고 지역과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하루 방문하고 떠나는 것과 지역에서 숙박하고 소비하는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또한주말마다 영천을 찾는 사람이 지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지역 주민 및 공동체와 관계를 형성한다면 단순 관광객을 넘어 관계인구로 발전할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 지역에서 일하는 통근자가 퇴근 후 지역에서 문화·체육활동을 하고 지역 상권을 이용하거나 가족과 함께 지역의 관광·교육·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면 통근형 생활인구가 지역경제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생활인구 정책은 ‘사람 수’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 사이의 접점을 늘리는 정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영천시가 이번 포럼에서 관광·문화·스포츠·농업·산업 등 지역자원을 사람의 이동과 체류, 지역 활동 및 관계 형성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영천의 기존 생활인구는 이미 ‘정책 자산’영천은 생활인구 정책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지역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생활인구의 흐름을 어떻게 지역활력으로 전환할 것인가가 중요한 지역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행정안전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영천은 생활인구 유형 가운데 통근형 지역으로 분류됐으며 통근형 생활인구의 특성을 활용한 정책 사례로 교통 및 생활 인프라 개선 등이 제시된 바 있다.
이는 영천의 생활인구 정책이 관광 중심의 단일 전략에 머물기보다 ‘일하는 사람’, ‘방문하는 사람’, ‘소비하는 사람’, ‘활동하는 사람’, ‘지역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는 다양한 생활인구 층위를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통근형 생활인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라면 산업단지와 일자리 정책, 교통정책, 상권정책, 문화·체육정책을 생활인구 정책과 결합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경북도 역시 생활인구 확대를 지역활력 정책으로 추진영천의 움직임은 경북 차원의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경북도는 생활인구 확대를 지역활력 정책의 주요 축 가운데 하나로 보고, 생활인구 확보와 정착 유도를 위한 생활인구지원센터 구축과 함께 작은 정원, 두 지역 살기, 유휴자원 활용 지역활력 사업, 시군별 생활인구 특화 프로젝트 등을 추진해 왔다.
결국 영천이 앞으로 만들어야 할 정책은 경북의 생활인구 정책과 연계하면서도 영천만의 인구 이동 특성과 지역자원을 반영한 차별화된 모델이어야 한다.
특히 ‘영천형 생활인구’가 누구인지부터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구 등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근로자 ▲영천을 찾는 관광객 ▲지역 축제·스포츠 행사 참가자 ▲농촌체험 및 체류형 프로그램 참여자 ▲세컨드하우스 및 두 지역 살기 참여자 ▲지역에서 장기간 활동하는 프리랜서·디지털노마드 ▲지역 학교·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외부 인구 등으로 생활인구를 세분화하고 각각에 맞는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
‘생활인구’를 ‘지역활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다음 과제이번 포럼을 통해 영천시가 다음 단계에서 풀어야 할 과제도 분명해졌다. 첫 번째는 데이터 기반의 생활인구 분석이다. 단순히 전체 생활인구 규모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지역에서 누가, 언제, 얼마나 오래 머무르고, 무엇을 소비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생활인구 유형별 맞춤형 정책 설계다. 통근형 인구와 관광형 인구, 체류형 인구, 관계형 인구는 지역에 기대하는 서비스와 필요한 정책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모든 생활인구를 확보하려는 접근보다는 유형별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체류시간을 지역경제와 연결하는 전략이다. 사람을 영천으로 유입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숙박·외식·쇼핑·문화·체육·농촌체험 등 지역 내 소비와 활동으로 연결해야 생활인구가 실질적인 지역활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네 번째는 민간과 지역공동체의 참여다. 행정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을 끌어오는 방식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생활인구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지역주민, 상인, 기업, 사회적경제 조직, 관광·문화·체육 분야 관계자 등이 직접 생활인구를 맞이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포럼’에서 ‘시범사업’으로…영천형 모델 구축 주목이번 포럼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생활인구 정책을 논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시범사업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생활인구 정책의 성패는 결국 현장에서 확인될 수밖에 없다. 영천의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통근자·관광객·체류자 등을 위한 생활서비스를 결합하거나, 관광·농업·문화·스포츠를 연계한 체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작은 규모의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영천의 경우 산업과 농업, 관광과 문화, 스포츠 등 서로 다른 지역자원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하러 온 사람을 생활인구로’, ‘관광하러 온 사람을 체류인구로’, ‘체류한 사람을 관계인구로’ 연결하는 단계적 전략을 고민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포럼은 영천의 인구정책이 ‘정주인구 확대’라는 기존의 단일 목표에서 벗어나 유입→체류→활동→관계→정주로 이어지는 인구정책의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병삼 시장 “영천에 맞는 생활인구 정책 발굴하겠다”김병삼 영천시장은 이날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인구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을 찾고 머무르며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역의 새로운 활력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포럼을 통해 영천에 맞는 생활인구 정책을 발굴하고, 행정과 민간이 함께 지역에 사람이 모이고 활력이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영천시가 생활인구를 새로운 인구정책의 축으로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실제 어떤 시범사업을 내놓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특히 영천은 과거 생활인구 시범지역 분석에서 통근형 특성이 확인된 만큼, 관광객 유치에만 집중하기보다 ‘일하는 사람’과 ‘방문하는 사람’을 지역의 소비와 활동, 관계로 연결하는 영천만의 생활인구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