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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초 동아시아를 뒤흔든 안시성 전투는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제국과 작은 성이 맞붙은 절체절명의 대결이었으며 동시에 지도자의 리더십이 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당나라 황제 당태종은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동북아 패권 장악을 위해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수십만에 달하는 정예군과 막강한 군사력은 당시 세계 최강 수준이었다. 반면 안시성은 병력과 물자, 규모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기록마다 차이는 있지만 안시성의 수비 병력은 1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안시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당태종은 결국 철수했다. 세계 최강 제국의 황제가 작은 산성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는 양만춘 장군이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한 부하가 양만춘에게 물었다고 한다. “장군, 우리가 과연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때 양만춘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신은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는가?”
이 말은 단순한 결의가 아니다. 지도자가 어떤 자세로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다. 승산이 있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조건이 완벽해서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사명이 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과 지역에서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선거 현장에는 조직력과 자금력을 갖춘 후보들이 있는가 하면 열세 속에서도 묵묵히 지역을 누비는 후보들도 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행동하는 후보들도 있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시민을 만나며 진심을 전하는 후보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는 언제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유권자의 마음은 거대한 조직보다 진정성에 움직였고 화려한 구호보다 절박한 책임감에 반응했다. 결국 선거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며 정치란 권력을 차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희망을 지켜내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오늘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안시성 전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승리의 기술이 아니다. 바로 양만춘의 리더십이다. 양만춘은 병력이 부족하다고 포기하지 않았고 현실이 어렵다고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두려움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었다. 지도자의 확신은 곧 공동체의 용기가 됐고 그 용기는 결국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를 만들었다.
지금 선거에 임하는 정치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자세다. 조직이 부족해도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금이 부족해도 정책과 진심으로 승부해야 한다. 비방과 방해가 있더라도 품격을 잃지 않아야 한다. 유권자를 숫자로 계산하지 말고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선거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전쟁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권자들 역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때때로 강한 후보, 유리한 후보, 이길 것 같은 후보에게 마음이 쏠리곤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은 언제나 시민의 양심 있는 선택에서 시작됐다. 누가 더 큰 조직을 가졌는가보다 누가 더 절실하게 지역을 사랑하는가를 봐야 한다. 누가 더 화려한 약속을 하는가보다 누가 더 책임 있게 행동해왔는가를 살펴야 한다.
안시성은 높은 성벽만으로 지켜진 것이 아니다.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사람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의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시민을 섬기겠다는 정치인의 각오, 그리고 사람다운 정치를 선택하겠다는 유권자의 의식이 함께할 때 지역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힘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리고 안시성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는가?”